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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방송의 추억과 일본 아니메 입문

유선방송의 추억과 일본 아니메 입문

저에게 일본 아니메 입문의 길을 열어준 유선방송의 추억에 관한 글입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워낙 즐겨 보았기에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 사이에 유선방송을 통해 접했던 각종 영화와 무협 드라마, 일본 아니메가 지금도 머리 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추억의 유선방송

유선방송의 추억

80년대 후반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집에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학급 회의 때 재미 반 장난 반으로 학급 친구들 집에 비디오가 있는지 조사를 해보았는데 86년 기준 50명이 넘는 반 친구들 중에서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경우는 1~2명 뿐이었습니다.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비디오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비디오 한 번만 보여주면 안될까?”라고 애원하듯이 부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비디오 플레이어를 가진 친구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잡화점 매장에 갔는데 TV의 이상한 채널에서 각종 영화와 무협 드라마,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통해 시청 가능한 영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보니 “**유선이라는 곳에 매달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영화를, 애니메이션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시청이 가능하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유선방송 4번 채널에서 람보 2편을 방영 중이었는데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유선방송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영화 끝나고 나서 유선방송 5번 만화채널로 돌려보니 ‘카루타’라는 로봇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카루타에 빠져들게 됩니다.

 

일본 아니메 입문

생각해보면 일본 아니메 입문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집 방문이었습니다.사실, 비디오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 다녀온 후에 아버지께 비디오를 사달라는 부탁을 수차례 해보았습니다만 그 당시에 가세가 기울어가는 시점인지라 당연히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런 환경에 갑자기 경험했던 유선방송이었고 더군다나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 당시, 애니메이션 채널에서는 주로 일본 아니메를 주로 재생해주었는데 특이한 점은 오전 일찍 로봇 애니메이션을 재생해주면 오후 5시까지 로봇 애니메이션만 모아서 재생해주었고 특히 ‘명견 실버’의 경우에는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끊임없이 재생해주어 정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아니메로는 카루타(단쿠가), 머신로보 바이칸(바이캄프: 크로노스의 대역습), 광속전신 알베가스, 철인 28호 등이 있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일본 아니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제가 좋아했던 유선방송의 일본 아니메가 최신 아니메는 아니었음에도 비디오가 있어야만 했고 TV에서는 접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했고 그때 처음으로 일본 아니메 입문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녁 5시 이후에는 부모님과 함께 유선방송에서 비디오판 영화를 감상하거나 의천도룡기, 수호지, 녹정기 등의 중국 무협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비디오판 영화의 경우 B급 무비였음에도 재미있을 것 같은 제목이어서 부모님과 함께 시청하다가 생뚱맞게 갑자기 므흣한 영상이 나올때는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유선방송을 여전히 즐겼는데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학교에서는 단체로 인근 가까운 극장에서 그 당시에 개봉했던 최신 영화를 보러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극장에 가지 않고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좁은 잡화점으로 가서 유선방송과 일본 아니메를 즐기곤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NAS에 일본 아니메를 한가득 저장해놓고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과거 유선방송을 보던 기분으로 감상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시청 가능

중학생이던 어느날, 학교 다녀와서 TV 채널을 돌려보는데(80년대 말이라 리모컨을 누르지 않고 채널을 돌리곤 했습니다.) 4번과 5번에서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잡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라 형을 불러 함께 시청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저희 집과 가까운 어딘가에서 유선방송을 보고 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신호가 잘 잡히는 날은 상당히 깨끗하게 시청 가능했고 그렇지 않는 날은 매우 열악한 화질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아니메는 빠짐없이 감상했습니다.

 

집에서도 유선방송 시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자고 형과 약속했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는 날에는 집에서 TV가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TV의 위치를 옮겨야 유선방송 신호를 잘 받을 수 있어 안방에서 작은 방으로 TV의 위치를 옮겨 시청했을 정도로 유선방송과 일본 아니메에 심취했던 저입니다.

 

애니메이션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사정이 생겨 한동안 포스팅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유선방송의 추억과 일본 아니메 입문에 관한 추억이 떠올라 적어보았습니다. END.